[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 ] 6월 누리달의 풍경과 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 ]  

낚시 여행을 가는 이유가 오직 낚시 때문이라면 그 사람은 완전 초보다. 고기를 잡는 일은 낚시의 일부.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실 낚시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뭔가를 잡는 일이다. 낚시는 경험담을 건지는 일이다. 멋진 고기를 잡으면 경험담 건지는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다. 빈손이 되는 것 자체로도 상당한 경험담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배에서 떨어지거나 조상에게 물려받은 낚싯대를 부러뜨린 일, 허리케인 때문에 강에서 떠밀려 나온 일은 큰 양동이가 넘칠 경험담이다. 송어를 찾아서 나무가 빽빽한 숲을 지나다가 뇌조(들꿩과의 새)를 밟는 바람에 수류탄을 밟은 줄 알고 가슴이 서늘한 일은 작은 컵 분량의 경험담이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 전에는 찾고 있는 줄 몰랐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무게도 없고, 나이나 가격도 없으며 가족사진처럼 다른 것으로 대신 할 수 없는 낚시 경험담은 다이아몬드보다도 귀하다. 경험담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폴 퀸네트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 중에서



*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낚시를 가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소에는 낚싯대를 손질하느라 마당에 낚시 도구들을 잔뜩 펼쳐놓곤 하셨다. 뭔 이유에선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부자간의 관계라는 것이 조금은 그렇고 그런 것처럼 원만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었다.

정정하시기만 하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고, 나는 충격을 받았고 엄청나게 슬펐고 혼자서 많이 울었다. 몇달이 지났을까 싶다. 낚시와 담을 쌓고 살아오신 것 같은 아버지가 낚싯대와 낚시 장비를 장만하시더니 할아버지처럼 낚시를 하시러 다니시는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은, 자주 아버지의 낚시 여행을 동행했던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아버지는 낚시꾼이 아니라 어부같다고 했다. 낚싯대를 엄청나게 많이 설치를 하고 떡밥을 풀어서 고기를 건져올린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낚시를 그렇게 하시느냐고, 아버지를 비난했다.

그런 아버지 또한 십여년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위암 판정을 받고 링거에만 의지한 마지막 투병중에도 극히 맑은 정신으로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주변을 정리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의 낚시 장비를 친구분에게 주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아버지의 표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하고 평화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낚시를 가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했다. 아버지는 그럼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해서 낚시를 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가 더많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아 나도 낚시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황인철 주註>

*풍경은 인터넷에서 가져 왔고 이 글은 '황인철의 아침공감'에서 가져
왔습니다.
글도 좋지만 황인철님의 주석이 더 찡한 감동으로 전해 오는 것 같습니다.
좋은 풍경과 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re} [1]..[181][182][183][184][185][186][187] 188 [189][190]..[256] {Next}  write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Copyright 1999- Zeroboard /Skin by LN